
이런 분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다녀온 공간인데 왜 좋았는지 말 못 한 적 있는 분
예쁜 공간보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공간이 있는 분
바로 이해되는 공간보다 자꾸 생각나는 공간을 좋아하는 분
요즘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다 보여야 해요. 어디가 포토존인지 바로 찾아야 하고, 소개 문장 한 줄로 정리돼야 하고, 인스타 올릴 사진도 금방 나와야 하죠. 친절한 건 좋은데, 너무 친절하면 이상하게 금방 끝납니다. 보기 쉽고, 이해도 쉽고, 그래서 기억에서도 빨리 빠져나가요.
그래서 이번 프리츠커상 수상 소식이 더 눈에 들어왔어요. 2026년 프리츠커상은 칠레 건축가 스밀리안 라디치 클라크에게 돌아갔습니다. 55번째 수상자이자 2016년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 이어 두 번째 칠레 건축가예요. 프리츠커상은 늘 지금 건축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처럼 읽히는데, 이번 선택은 유난히 결이 또렷해요. 한 번에 다 설명되는 건축보다, 걸리는 게 남는 건축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니까요.

라디치의 작업은 딱 떨어지게 정리되는 타입이 아니에요. “아, 이런 스타일이네” 하고 바로 끝나는 건축이 아니라는 뜻이죠. 낯설고, 거칠고, 때로는 임시 구조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2014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오래 남습니다. 잘 정리된 건물보다,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건물처럼 느껴지거든요. 심사위원단도 그의 건물이 “임시적이고, 불안정하거나, 의도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구조적이고 조용한 기쁨의 쉼터를 제공한다”고 평했어요. 완성된 정답처럼 닫힌 건축보다, 기억과 재료와 분위기가 겹쳐진 건축에 더 가깝다는 얘기죠.
이게 왜 지금 더 의미 있냐면요. 요즘 건축과 공간은 너무 똑똑한 쪽으로만 흐르기 쉽거든요. 동선도 좋아야 하고, 사용성도 좋아야 하고, 사진도 잘 나와야 하고, 브랜드 메시지도 분명해야 해요.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너무 잘 풀린 공간은, 가끔 너무 빨리 소비됩니다. 첫인상은 선명한데 여운이 짧아요.


라디치의 건축은 반대쪽에 있어요. 바로 이해되기보다 뭔가를 남겨두는 쪽이에요. “왜 좋지?”를 바로 말하게 하기보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게 하죠. 이번 수상의 핵심도 거기에 있어요. 좋은 공간은 꼭 첫 장면에서 자기를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바로 이름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가 오히려 사람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사실 요즘엔 건축도 너무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요. 친절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고, 찍었을 때도 좋아야 하죠. 그런데 공간은 원래 기능만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머문 느낌, 몸이 반응한 방식, 괜히 한 번 더 떠오르는 장면으로 남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라디치의 건축은 “좋은 건축은 설명이 명확해야 한다”는 흐름에 옆으로 서 있어요.
그래서 이번 프리츠커상은 단순히 한 건축가를 칭찬하는 소식으로만 안 읽혀요. 친절함 말고도 여운이 있고, 정리 말고도 낯섦이 있고, 효율 말고도 기억에 남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요즘 공간이 놓치기 쉬운 걸 다시 짚은 선택이에요.
《한줄평》
친절한 공간은 많아요. 근데 자꾸 생각나는 공간은 보통 낯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