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된 미술관의 ‘내일’

내셔널 갤러리 200년 만의 최대 확장, 설계는 켄고 쿠마

Ji Su Han2026. 04. 134분
Kin creatives

이런 분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 오래된 기관이 갑자기 젊어지려 할 때 오히려 어색했던 분 

  • 변화와 보존 그 사이, 공간 리뉴얼의 황금 밸런스가 궁금한 분 

  • 세계 최고 미술관들이 켄고 쿠마를 자꾸 부르는 이유가 궁금한 분 


오래된 미술관은 가만히 있어도 될 것 같죠. 이미 사랑받고, 이름값도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진짜 오래가는 곳일수록 스스로 더 자주 물어요. 우리는 지금 시대와 맞닿아 있는가, 하고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도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새 윙 설계자로 켄고 쿠마 팀을 발표했거든요. 프로젝트 이름은 도마니(Domani), 이탈리아어로 ‘내일’이에요. 도마니라는 이름도 우연은 아니에요. 내셔널갤러리의 컬렉션 근간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인 만큼, '내일'을 이야기하는 방식조차 헤리티지를 품고 있는거죠.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증축과는 거리가 멀어요. 새 윙은 1900년 이후 작품까지 확장된 컬렉션을 담고, 트라팔가 광장과 레스터 광장 사이 공공 공간도 함께 새로 엮어요. 전시 공간은 기존보다 15% 이상 늘어나고, 2030년대 초 완공을 목표로 해요. 방 하나 더 짓는 게 아니라, 미술관이 도시와 만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정리하는 거죠. 

Kin creatives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새롭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이어붙이느냐예요. 오래된 기관의 확장은 늘 어렵죠. 너무 조용하면 왜 바꿨는지 모르겠고, 너무 튀면 원래 분위기를 망쳐요. 내셔널 갤러리는 이미 1991년 세인즈버리 윙을 지을 때도 기존 건물과 어울리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어요. 이번엔 그 경험까지 쌓인 상태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선택을 한 거예요. 

ODUNPAZARI MODERN MUSEUM (OMM) I Kengo Kuma and Associates.

켄고 쿠마가 선택된 것도 그 맥락이에요. 쿠마는 재료와 빛을 다루는 방식으로 알려진 건축가예요. 화려하게 튀기보다, 주변 맥락을 읽고 거기에 스며드는 쪽에 더 가깝죠. 관장 가브리엘레 피날디도 쿠마의 작업에서 위치와 역사에 대한 민감함, 빛과 재료의 아름다움을 봤다고 했어요. 심사위원단이 당선안을 “모범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렌조 피아노와 포스터 앤 파트너스를 제쳤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나를 봐” 하는 건축이 아니라 “여기에 잘 들어가겠다”는 건축이 선택된 거예요. 

오래된 기관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어요. 너무 급하게 회춘을 시도한다는 거예요. 화제를 좇아 기획을 바꾸고, 새 건물을 간판처럼 앞세우죠. 그러면 새로워 보이기는커녕 더 어색해져요. 자기 헤리티지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헤리티지를 지금도 작동하게 만드는 것. 그게 오래된 기관이 멋있어지는 방식이에요. 1824년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변화라고 스스로 표현하는 내셔널 갤러리가 택한 방식도 그거예요. 정체성은 남기고, 표정은 업데이트하는 것. 

The National Gallery

좋은 리뉴얼은 억지스럽지 않아요. 막상 가보면 훨씬 자연스럽고 지금 시대에 맞는 공간처럼 느껴지는데, 뭐가 달라졌는지는 딱 말하기 어렵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건 기존 것이 틀려서가 아니에요. 그것만으로는 오늘을 다 설명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죠. 내셔널 갤러리는 그 순간을 알고 움직였어요. 


에디터 한줄평

무엇을 바꿀지 정확히 아는 것이 진짜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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